매우 복잡한 서사다.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줄 곧 하나라고 느꼈다.
생존과 이상 그리고 사랑.
극단적인 생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당신은 과연 무엇을 택할 것인가?
도덕성, 인류애, 인간의 존엄성은 숭고한 가치이지만 생존보다 앞서는가, 아니면 생존 위에 이러한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다른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가?
1. 예원제
책의 시작부터
문화대혁명
이는 생존과 인간의 도덕성 사이의 갈림길에서 극명하게 나뉘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대부분이 생존을 택한다.
예원제는 이런 인류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외계 생명체, 삼체에게 지구 정복을 요청한다.
2. 뤄지
뤄지는 대단히 특이한 인물이다.
어떤 가치에도 무관심하다. 심지어 생존에도. 인류의 생존에는 더더욱 무관심하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 그가 책의 중후반부에서는 인류를 마지막까지 수호하는 인물이된다.
삼체는 뤄지를 가장 위험인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예원제가 전수한 우주사회학의 공리 때문이며 그리고 그의 기질 때문이다.
우주사회학의 공리, 생존이 최우선이며 모든 개체는 발전, 성장하지만 우주총질량은 보존된다. 이는 곧 우주가 냉혹한 생존게임을 의미한다. 여기에 또 '의심사슬', '기술폭발'이라는 말까지 예원제는 남기는데
'의심사슬'이란 멀리 떨어진 두 문명 사이에서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확신을 갖기가 불가능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의심이 끝없이 사슬처럼 이어진다는 것. 마치 서로가 권총으로 서로를 겨누는데 나는 총을 쏘지 않아야지 생각하지만 상대는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없으며 또 상대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다.
'기술폭발'이란 한 문명에서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였나? 때문에 그 문명이 언제 발전해서 자신의 문명을 향해 총을 겨눌지 알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암흑의 숲'이라는, 우주는 보이지 않는 총구들이 무수히 많이 숨어있는 암흑 숲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을 깨달은 뤄지가 가장 위험인물로 삼체는 인식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뤄지는 인류구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삼체가 자신을 가장 위험인물로 꼽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면벽자로 뽑혀 세상의 기대를 받는다.
면벽자가 될 생각이 없다고 밝히고 면벽자의 특혜를 빌려 사랑하는 사람과 지상낙원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정부가 그의 아내와 딸을 동면시켜 버린다.
인류 최후의 날까지.
살면서 부모님 외에는 그의 마음 속 한 켠을 내준 적 없고, 세상 어느 일에도 진심을 내비치지 않았던. 그러나 그의 아내와 딸은 그의 전부였다. 예원제가 옛날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 속에 답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뤄지는 결국에는 '암흑의 숲'을 떠올려 낸다. 그리고 결국 삼체문명은 뤄지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면벽자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이어서 평생을 검잡이로서 삼체 문명을 경계하는 삶을 살아간다.
삼체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뤄지를 가장 존경하는 인간으로 삼는다.
암흑의 숲 개념을 아는 것과 별개로 삼체 문명이 뤄지를 가장 두려워 했던 이유는
그는 정말 우주에 지구와 삼체의 좌표를 알리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고귀하면서도 말랑한 가치들에 집착이 없었으며 냉혹한 생존게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키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가족들의 안녕 뿐이었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도록 하는 삼체가 위협을 가한다면 지구 또한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삼체는 알았다.
삼체의 위협 속에서 대중이 승리주의, 패배주의에 빠지며 혼란을 겪을 때에도, 인류의 미래를 걸고 위협을 가하는 데도 뤄지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암흑의 숲' 개념이라는 강력한 삼체 견제 무기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초연히 자리를 지키며 생존에도 그리고 인류의 가치에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며 날카로운 검을 계속 겨누고 있는 뤄지였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젊을 적 누구보다도 자유를 추구했던 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책임을 지고 그것에 기뻐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그의 전부였고, 그에게는 어느것도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호주 원주민 잭슨과 조금 대비되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연 속에서 자신 만의 리듬으로 깊이 있는 삶을 누린. 이런 대사를 남겼다. "중요한 임무가 있다. 하지만 침착해야해. 서둘러선 안돼. 종말을 피할 수 없다면, 현재를 즐겨야지."
3. 뤄지와 반대되는 인물로 제2대 검잡이 청신이 등장한다.
청신은 인간의 도덕성, 인류애를 놓지 못하는 인물이다. 생존을 내놓더라도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을 택하는 인물이다.
극단적인 위험 속에서도 착함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삼체는 이런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검잡이가 되던 그날 지체없이 지구로 돌격한다.
결과적으로 지구는 청신의 도덕성으로 우주에서 없어진다.
4. AA
AA는 매우 훌륭한 조연이다.
인간의 숭고한 가치 빼면 시체인 청신 옆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3명의 학생만 우주선에 태울 수 있는 상황 속,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난 기회를 줬어요. 생존하려면 경쟁에서 이겨야죠."
도덕성을 찾다가는 모두 다 죽는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필요한 경쟁은 해야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뤄지가 떠오른다. 지구를 두고 인류를 대표해서 삼체 문명과 평생을 경쟁해 온.
그는 그에게 관심없는 것에는 경쟁과 거리가 멀었지만, 그가 지키고 싶은 것에는 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평생을 쏟아부어야 하는 경쟁이라고 해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읽어도 읽는 재미가 사라지지 않는 책이다.
그만큼 처음 읽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나는 요즘 어떤 것을 읽어도 '어떻게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의 관점으로 읽게 된다.
차가운 우주 속에서 어쩌면 나는 청신과 같은 고상한 자세를 취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AA의 대사가 가장 인상깊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난 기회를 줬어요. 생존하려면 경쟁에서 이겨야죠"
나는 어떤 경쟁에서도 굳이 내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나...하는 회의적 자세를 취해온 것 같다.
부모님도 왜 그렇게 느긋한지, 죽을똥 살똥 하지 않는 내 모습에 아쉬움을 이야기하신다.
냉혹한 세상 속 부모님이 뤄지와 같이 평생을 바쳐 나를 보호해 와서 나는 너무나 세상의 참혹함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청신과 같이 생존보다도 이상에 가치를 더 두게 된 것은 아닌지. 이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해? 안한다고 뭐 어떻게 되진 않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닌데?하면서.
5.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내가 지키고 싶은 건 뭘까?
나 역시 미래의 가족을 지키고 싶고 그리고 나도 삶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선택적 경쟁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하다.
개체가 많은 상황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너무 아름다운 생각만 하면서 살 수 없다.
생존하려면 해야하는 경쟁이 있다. 모든 경쟁에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한 경쟁에는 죽자사자 참여해야한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가진 리소스로 이 경쟁에 참여해서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는지.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전략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켰을 때, 사랑을 나누어 주자.
그러니까 우선 뤄지가 되고 그리고 나서 청신이 되자.
생존하고 나서, 내가 지켜야하는 것들을 지키고 나서 그것들을 나누자.
6. 그리고 마지막.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소우주를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책에서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바로 태양계는 '저엔트로피 존재'라는 것이다.
우주는 모든 것이 시간 위에서 열적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시간이 흐를 수록 모든 것은 붕괴되고 무질서화 된다.
3권 후반부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암흑의 숲에 대해 류츠신이 상상한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인데 우주의 관리자가 삼체와 태양계를 바라보며 저엔트로피 존재니까 삭제를 해야한다고 한다. 이유는 없다. 그저 대자연의 섭리라면서.
대자연은 엔트로피가 상승(무질서도 상승)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구는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이루고 흐트러진 모래와 돌들을 기술로 빚어 건축물을 만들고 또 뭔가를 착착 만들고 통제해나가는 무질서도를 낮추는 존재이다. 그래서 제거대상이 된다는.
그리고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저엔트로피를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이 붕괴되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붕괴되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간다.
위텐밍(?)이 청신에게 선물한 시간에서 벗어난 소우주 차원처럼. 우리는 저마다 그런 지키고 싶은 것들을 소우주 속에 지키며 안고 살아가는구나. 찰나같은 일생동안 잠시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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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 - 뤄지의 냉소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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