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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쓰기 일기장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thanks to)

by juhyeonglee 2025.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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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두려움.
대단한 학생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 있다.
동시에, 그들 사이에서 내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든다.
 
그들이 쌓아온 시간에 비해 내가 쌓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배로 더 해야할 것이다.
체력관리, 깡다구, 그리고 인간관계, 멘탈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신기하다.
막연히 꿈꾸던 것을 얻게 됐다.
회사를 다니며 멍한 표정으로 나는 저기 대학원에서 낮에는 탐구하고 저녁에는 운동하고 그리고 다시 탐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음 내가 할 일은,
내가 원하는 막연한 다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을 한 선생님이 이미 그려주신 것 같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고, 그 이후에 이를 기반으로 더 나아가던 혹은 크게 전환하던지 할 수 있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져가며. 중요한 것은 큰 뿌리를 바탕으로 넓게 가지를 쳐 나가는 것"
이 연구실에서 생존하고, 더 나아가 중심축으로서 성장하겠다. 내가 없이는 이 연구실이 돌아가지 않게끔 만들겠다.
그래서 어느 기업에서도 자기에게 오라며 러브콜을 보내는.
이를 바라보며 나는 더욱 가치있어 보이는 일, 나의 삶을 더 잘 지켜나갈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겠다.
그리고 동시에 과정과 존재의 소중함도 아는 사람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나는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내가 견딜 수 있는 것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계속 대화를 주고 받았던 것 같다.
이거? 아... 이거? 아니... 이거!?!
장사를 해보고, 자대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금방 나와보고, 중견기업에 취업해 나의 '자아'가 분쇄돼어 봤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책을 읽으면서 우당탕탕 사건들이 하나의 궤로 정리되었다.
내가 대학시절부터 느껴왔던 불완전함, 공허함, 불안함.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진로에 대한 고민들.
언제나 나는 뭘하게 될까? 고민했지만 그 답은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고 답도 없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바에야 그냥 '어른들'이 가라고 하는, 공기업, 대기업, 공무원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그리고 왜 왔는지를 저자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중세에서 근대로 시대가 바뀌면서 집성촌은 초개인화가 되었고
사회가 강제해주던 계급, 직위, 계층사회에서 해방되고
개인은 감당하기 힘든 자유를 얻었다.
동시에 사회의 강제성은 외부에서 개인의 내면 그리고 사회분위기(여론)로 변화하며 사라지지 않고 생존했다.
그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것이 아닌, 여론의 목소리를 따를 확률이 높다.
자아를 스스로 포기하고 다시 사회가 요구하는 것으로 자신을 의탁한다.
급격히 주어진, 무한한 자유 속에서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중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고독과 불안을.
반대로, 자아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에도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무한한 공허함.
 
결국 사회가 바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행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현 시대에서 유일하게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 생존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린시절부터 아이의 '독립성', '자발성'이 부모, 학교, 사회로부터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 아이 내면에서 독창적으로 발생하는 '무엇인가를 행하고자 함'을 행할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로서 어려운 점은, 그것이 '어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돈벌이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주변의 많은 경우, 어릴 때부터 강하게 학업 drive를 건다. 수많은 학습지, 숙제, 단어, 암기 등. 이는 마치 농약과도 같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강력한 외압, stress를 걸어준다. 하지만, 그 농약은 아이들 내면의 자발적으로 하고싶은 마음, 영혼까지 없애버린다.)
내가 나의 부모님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이 지점이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스스로 사회와 대화하며, '자발성', '독창성'을 지키며 그것을 수정해나갈 수 있도록 '무한한 신뢰'를 사랑으로 주었다.
그 결과, 나는 자발적으로 다양한 '자발적 선택'과 '행함'을 할 수 있었고, 사회는 나에게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었다.
하나씩 소거해가며, 그리고 사회가 나에게 가장 큰 칭찬을 해준 것을 기억하며, 동시에 내가 가장 내면 깊은 곳에서 충만함을 언제 느끼는지를 확인하며 지금까지 온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엉망진창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야 돌아보니 하나의 실에 꿸 수 있는 구슬들 같다.

+ 25.12.13 

아래 영상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발견했다.

요지는, 아이들이 내적에너지를 마음껏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어른들의 초조함.

아이들이 허무맹랑한(어른들이 보기에) 꿈을 마음껏 꾸고 시행착오를 통해 '비전'(보다 현실적인 삶의 전략)으로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아이들이 자신의 내적 무한동력, 무엇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갖추도록 하는 것.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시대에, 상황에 맞게 무궁무진한 옵션 속에서 자연스럽게 직업, 일로 나타날 것.

https://www.youtube.com/watch?v=VpOrYvq7ruk&list=LL&index=3

 

 
감사하다.
나를 무한히 신뢰해준 부모님에게.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운명처럼 길을 터준 고3 담임선생님께.
나를 키워준 대학, 교수님, 친구들.
막연히 공기업에 가고 싶다는 나에게 "왜?"를 꼬리질문으로 연달아 5번을 물어보며 삶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준 선배에게.(당시 나는 더욱 큰 혼란에 빠졌지만.)
탐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지도교수님께.
인간관계에서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나의 감정그릇을 넓혀준 나와 갈등을 해준 사람들에게.
잃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은 것이 있다. 기버가 결국 최종 승리자. 너무 몸을 사릴 것 없다, 겁먹을 필요 없다, 사소한 것을 내어주고 중요한 것을 취해라. 등등의 삶의 경험을 나눠주신 선생님께.

+ 25.12.13

'기버'에 대해서.

글로벌 명문 대학들이 '기버'의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으려 한다는 이야기.

영상에서 이야기하기를 '기버'란 단순히 희생하는 이가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것을 민감하게 찾아 제공하는.

그래서 돈도 벌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찾아오는.

그래서 성공과 행복은 두마리가 아닌 한마리의 토끼.

https://www.youtube.com/watch?v=_MVOBwxy-Ew

대학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준 회사에게.
그리고 너무나 부족한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진학할 연구실의 교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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